(2015년 10월에 작성한 글입니다.)
지난 9월말 미국 캘리포니아
플레몽 공장에서는 테슬라모터스의 3번째 모델이자 크로스오버 SUV인
테슬라X가 공개됐다. 이 행사에 쏠린 사람들의 관심은 더
이상 완전충전 상태에서의 최대 주행 거리나 배터리 충전 시간, 최고 속도와 제로백* 수치 같은 전기차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이 아니었다. 대중들의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최첨단 고성능 SUV로서 어떤 장점이 있느냐였다. 이미
전기차가 일반 내연기관 차에 비해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음을 이전 모델인 모델S를 통해 증명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전기차에
대한 대중들의 시선은 환경론자들이 관심을 갖는 친환경과 재생에너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환경에는
도움이 되지만 가격은 비싸고 주행거리는 짧고 충전은 불편한, 대중들이 상대하기에는 단점이 너무도 많은
자동차가 전기차였다. 기존 자동차 업체도 100% 전기차의
개발에 관심을 가지긴 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실제 상용화할 만한 수준의 자동차를 만들지는 못했다.
그러나 지금 테슬라는
짧은 시간에 로드스터와 모델S, 2개의 모델 만으로 기존 전기차가 가지고 있던 한계를 극복하고 대중들의
편견을 깨나가고 있다. 특히 이미 존재하는 안정적인 기술 중에서 최고의 것을 선택, 최고의 퍼포먼스가 나오도록 기능을 개선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운 점이다. 테슬라는
수십 년 전에 개발된, 3상 교류 유도 모터나 파나소닉의 원통형
18650 리튬 이온 배터리 등을 가져다 사용하고 있다.
전기차는 모터와
배터리의 조합에서 오는 높은 초반 가속력과 구조의 단순함 등이 장점으로 꼽힌다. 내연기관 자동차들은
초반의 낮은 회전비로 인해 일정 수준 이상의 힘(토크)이나
속도를 내려면 불완전 연소 과정을 거치고 변속기를 비롯한 다양한 장치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의
손실로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전기차에서 사용하는 모터들은 처음부터 최고 회전비가 가능하며
상대적으로 넓은 구간 동안 최대 토크의 유지가 가능해 순간 가속력이나 힘이 대단히 세다. 전기차는 힘이
약하고 고속주행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세간의 통념은 기술적으로는 정반대인 것이다.
전기차는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높은 배터리 가격과 최대 주행거리의 한계라는 결정적인 단점 때문에 이용자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리튬 이온 배터리의 개발로 높은 에너지 밀도의
전지를 저렴하게 쓸 수 있게 됨에 따라 최대 주행거리가 점점 늘어났다. 게다가 전기 요금의 인하로 유지비도
크게 줄었다. 다시 한번 내연기관 자동차와 경쟁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990년대 후반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대기자원위원회(CARB)는 자동차 업체들이 지역 내에서 신차를 판매하려면 배출 가스가 전혀 없는 무공해 자동차를 15%는 생산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어쩔 수 없이 다양한 형태의
무공해 자동차를 개발, 생산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새로운 이동 수단이 아니라 내연기관 자동차의 연장선에서 연료만
배터리로 바뀐 자동차로 전기차를 정의했기 때문이다. 현재 내연기관 자동차들의 플랫폼은 오랜 시간의 연구와
경험을 바탕으로 그 크기와 위치와 형태가 정착된 결과다. 이를 전혀 다른 탈 것인 전기차에 적용하니
전기차가 가져야 할 장점은 줄고 단점은 늘어나는 상황이 됐다.
전기차는 변속기나
중앙 터널, 배기 장치, 열 차폐 장치, 촉매 컨버터, 각종 오일 등이 필요 없다. 이 때문에 내연기관 자동차의 10%에 해당하는 부품이면 충분히 제작할
수 있다. 게다가 모터도 엔진에 비해 상당히 작아 공간 활용의 효율이 높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배터리의 크기와 형태다. 기존 내연기관 플랫폼을 함께 쓰면 공간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해 제대로
연비를 내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배터리를 트렁크에 놓게 돼 곳곳에 공간의 여유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트렁크의 크기는 줄어드는 상황이 발생한다. 내연기관 플랫폼 대신 조립식 키트 카를 이용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테슬라는 전기차의
장점을 극대화 하고 단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델 S의
플랫폼을 전기차용으로 새로 설계했다. 가장 부피가 큰 배터리 팩을 차체 바닥에, 모터는 바퀴 사이에 둬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은
물론 성능을 높였다. 기존의
플랫폼은 내연기관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전기차용으로는 비효율적 이었기에 전기차의 기술적 장점을 100% 구현할 수 없었다. 기존 자동차 메이커들이 테슬라와 같은
파괴적 혁신을 할 수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테슬라는 과감하게 기존의 모든 기술적 자산을 버리고 전기차라는 사고로 전환하는 길을 택했다.
배터리의 가격과
무게, 용량으로 인한 최장 주행거리의 부족과 긴 충전 시간은 여전히 전기차의 핵심적인 단점이다. 여러 가지 전기차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대중화가 더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테슬라 역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줄이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부분에서 테슬라의
가장 큰 특징이자 강점은 당연히 배터리와 충전 인프라 그리고 솔라시티나 기가팩토리(둘 다 테슬라의 엘론
머스크가 CEO를 맡고 있다.)와 연계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친환경 자원과 재생에너지 사이의 확장성과 다양성은 테슬라의 잠재력을
보여준다.
현재 대부분의 전기차는
리튬 이온 배터리를 사용하고 있다. 다른 2차 전지에 비해
높은 출력과 저장 밀도, 가벼운 무게, 가공의 편리성 등의
이유 때문인데 상대적으로 안전성이 떨어져 과열이나 과충전에 취약한 단점이 있다. 테슬라의 특허 중 약 70% 가까이가 배터리 관련이며 그 중 44건인 27.5%가 과열 방지 관련 특허인 것도 이 때문이다.
테슬라는 이 리튬
이온 배터리 중 파나소닉에서 개발한 원통형 18650 배터리 약
7000여개를 직병렬로 연결해 배터리 팩으로 사용한다. 에너지 밀도가 가장 높고 가격이
저렴하며 이미 오래 전에 대중화돼 공급이 충분하다는 장점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기차로의 전환에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되는 가격을 더욱 낮추기 위해, 원통형 리튬 이온 배터리 생산 공장인 기가팩토리를 직접
건설하고 있다.
2017년 기가팩토리가 직접 배터리 생산을 시작하면 지금보다 30% 이상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게다가 일정 수준 이상 배터리 노후화할 경우, 주택용 태양광 발전시설 공급업체인 솔라시티를 통해 실질적인 가격을 더욱 낮출 수도 있을 것이다. 가정용 혹은 산업용 ESS(에너지저장장치)*를 재사용하거나 저렴하게 공급된 대용량 배터리를 바탕으로 V2G(전기차 그리드서비스)*을
활용하는 등 배터리를 2차
사용한다는 것.
표준화는 대체로 안정성과 편리함을 주지만 때로는 발전과 혁신을 막기도 한다. 테슬라의 경우, 자동차 제조라는 가장 보수적인 업계에 속해 있지만 적극적인 추진력과, 규제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에 있어서는 실리콘밸리적인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 성격이 가장 잘 드러난
부분이 충전 인프라 개발 부분일 것이다.
전기차 대중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충전이다. 테슬라의 모델 S는 가격과 무게를
최소화하면서 최장 거리를 늘리기 위해 70kWh 또는 85kWh(모델X는 90kWh를 사용한다.)의
배터리를 사용한다. 이 거대한 배터리를 기존 충전 인프라를 이용해 충전한다면 급속으로도 2시간에 달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인프라의 표준화 조차 더딘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테슬라는 과감하게 자체 규격을 도입했다.
완속 충전은 듀얼
모드에서 최대 20kW로 가능하며 슈퍼차저라 불리는 급속충전은 최대 135kW의
충전을 제공(모델 S의 내부 시스템의 한계치이다.)한다. 슈퍼차저를 이용할 경우
40여분 정도면 완전히 충전할 수 있고 10분의 충전으로도 120km 이상 주행할 수 있다. 게다가 모델 S 이용자에겐 평생 무료 충전을 제공한다. 이 슈퍼차저는 지붕에 솔라시티에서 제공하는 태양열 집열판을 설치, 태양열에서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진정한 의미의 친환경 재생에너지를 활용한다. 또 생산된 잉여 전력을 이용해 다양하게
활용할 수도 있다.
애플은 전혀 다른
분야의 기업이지만 여러모로 테슬라와 비교가 되는 경우가 많다. CEO인 엘론 머스크가 지금은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와 종종 비교 되기도 하고, 첨단 기술을 대하는 접근 방식이나 시장에의 영향력, 실제 이용 고객들의 제품 경험 등이 유사점으로 손꼽히는 부분이다. 아이폰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이 테슬라 전기차를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부분은
테슬라가 자동차를 대하는 태도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엘론 머스크는 현재의 흐름이 전기화, 자동화, 연결화로 흘러가고 있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이 흐름에 맞춰 테슬라는 탈 것이나 이동 수단으로 자동차를 대하지 않고, 움직이는
네트워크 컴퓨터로 자동차에 접근하고 있다. 시스템이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데 머물지 않고 동등한 수준
이상으로, 시스템 전체를 하나로 통합한다. .또 네트워크와
연결하여 원격에서 관리하고 이미 나와 있는 기술을 사용자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사용 가능하도록 만들어주는 방식도 애플과 비슷하다.
대부분의 자동차
제조 업체들은 부품의 상당수를 아웃소싱 하고 있어 각각 독립적인 시스템으로 개발된다. 때문에 시스템
전체를 하나로 통일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테슬라는 대부분의 시스템을 자체 개발하거나 통제 하에 두고
있어 시스템의 통합이 가능하다. 그 결과, 테슬라 전기차
이용자들은 언제나 최신의 기능을 최신의 상태로 차고 안에서 편안하게 접할 수 있다. 테슬라는 적어도 1년에 두 번씩 정기적인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진행한다고 한다. 그래서
테슬라 전기차는 기존 자동차들처럼 영업소에서 딜러를 통해 판매하지 않고, 마치 최신 IT 기기처럼 애플스토어와 같은 전문 매장이나 인터넷으로 판매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통해 보면 테슬라의 최대 강점은 배터리나 충전 인프라 등의 어느 한 기술적인 요소가 아니라 전기차라는 제품을 기존 업체들과는 다르게 사고의 전환을
통해 처음부터 새롭게 정의했다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전용 플랫폼을 개발하고, 파격적인 충전 인프라를 구축하고, 이동하는 컴퓨터로서 시스템을 통합하고, 장기적인 비전을 통해 기가팩토리와 솔라시티 등을 구축하는 지금의 결과물이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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